호의는 선택이지, 권리가 아니다
호의는 선택이지, 권리가 아니다
그날도 나는 참았다. 회의가 끝난 직후, 상대가 거칠게 내게 다가와 쏘아붙였을 때도.분명 내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그는 들은 체도 않고 화를 냈다. 말투는 거칠었고, 눈빛엔 억울함이 아닌 분노만 가득했다. 화가 치밀었다.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데, 나는 억눌렀다. “지금 터지면, 더 큰 상처가 남겠지.”한쪽에선 참는 내가 현명하다고 말했지만, 다른 한쪽은 외쳤다.
“왜 자꾸 네가 참아야 해?”
사실,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동료와 트러블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 그래서 조금 억울해도 넘겼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먼저 사과했다. 관계가 깨지는 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 선을 넘었다.
저녁에 나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 술잔을 앞에 두고, 감정이 아닌 단호함으로 말했다.
“내가 오늘 왜 그랬는지 충분히 설명했지.그런데 너는 그걸 무시했어. 싸가지 없게 굴었고, 난 그걸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지금이라도 사과해. 이건 너의 오해가 만든 일이니까.” 그는 당황했고, 곧 사과했다.
그러나 그날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내 사정을 먼저 들었던 부하직원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중요한 맥락은 빠지고, 말은 축소됐고, 결과적으로 나는 불필요한 오해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도 따끔하게 말했다.
“말은 정확해야 해. 네가 적당히 넘기고 임의로 바꾸면,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명예와 관계를 망가뜨리는 일이야.조직은 신뢰 위에 세워지는 거야. 말 한 마디, 전달 하나가 그 신뢰를 지탱하지.”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생존의 기술이자, 신뢰의 토대다. 정확한 정보 전달은 단지 실수 방지를 넘어서, 동료 간의 관계를 맑게 유지하는 기본이다.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는 부당한 오해를 감당해야 한다.
그 경험을 겪으며 나는 한 가지를 더 깊이 깨달았다.이런 문제는 직장뿐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 처음엔 작은 배려에도 고맙다고 말하던 사람이,어느 순간부터는 그 호의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감사를 무디게 하고, 존중을 흐리게 만든다.
“원래 잘해주던 사람이니까.”“항상 그랬잖아.”
그 말 뒤에는 ‘고마움’ 대신 ‘기대’가 자리잡고 있고,그 기대는 결국 책임을 강요하는 오해로 번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익숙함은 축복이자, 함정이다. 그 속에 존중이 없다면, 그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이후로 나는 내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예전처럼 무조건 참지는 않는다.그렇다고 쉽게 사람을 밀어내지도 않는다.나는 여전히, 조금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그게 더 편하기도 하고, 내 방식이니까.
나는 아둥바둥 내 이익만 챙기며 살 수도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만든 길이 아니라 그저 자신답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싶을 땐 선을 긋는다.호의는 내 선택이다. 누구에게나 줄 수 있지만,그걸 권리로 착각하는 순간—나는 멈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보다,내 사람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나대로,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살아간다.그러나 내 발자국은 묵직하다.
호의는 선택이지, 권리가 아니다.
© 2025 by 동화의 글방. 무단 복제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