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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

오랜만에 찾은 화정역, 변화를 담다

by 두 번째 햇살 202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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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화정역, 변화를 담다

불광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후배와의 저녁 약속. 오랜만에 지하철 3호선을 타기 위해 화정역으로 향했다. 한때는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발길이 뜸해진 이곳. 꽤 오래전, 천정부지로 오르던 서울의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 조금은 숨통이 트일 듯한 곳을 찾아 옮겨온 곳이 바로 고양시에 있는 화정역 근처였다. 지하철도 있고, 서울보다는 가격대도 낮았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화정에서의 시간들. 몇 번의 이사 끝에 이곳을 떠났지만 오랜만에 다시 걷는 거리에는 여전히 어딘가 익숙한 공기가 감돌았다.

화정역 광장에서 바라 본 상가 건물들. 가운데 보이는 공간이 로데오거리 입구

 

지나간 세월이 만들어낸 거리의 작은 변화들. 한때 화정동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일산 신도시와 비교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상권도 크지 않아 조금은 조용한 동네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화정은 어딘가 소박하고 담백한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오래된 필름 사진처럼.

 

재미있는 사실 하나. 화정역 인근 아파트 단지들의 이름인 ‘별빛마을’, ‘햇빛마을’, ‘옥빛마을’, ‘달빛마을’, 그리고 ‘은빛마을’은 개그맨 유세윤 씨가 중학생 시절 공모전에 참여해 당첨된 이름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던 걸까. 그가 지은 이름들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동네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특별해지는 기분이다.

화정역 인근 쇼핑몰 세이브존(우측 건물)

 

하지만 도시도 사람처럼 변해가는 법. 다시 찾은 화정역 주변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들은 그대로였지만 공터였던 곳에는 어린이 박물관이 들어섰고, 여기저기 우뚝 솟은 오피스텔들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바빠 보였고, 상점들의 간판도 조금은 세련돼진 느낌. 조용했던 그때의 화정은 사라지고 활기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화정역의 명물 - 1등 배출 명문 로또 판매점과 분식 포장마차

 

화정역 앞 광장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변했지만 어딘가 여전히 익숙한 이 풍경. 그리고 그 순간, 광장 중앙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에 마음이 끌렸다. 외국인 연주자가 연주하는 낯선 풍경. 보통 버스킹은 한국인들이 하는 모습만 봤었기에 이 장면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익숙한 멜로디가 광장을 가득 메우는 순간,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에 잠시 넋을 놓고 감상했다.

바이올린 버스킹 중인 외국인

 

카메라를 꺼내 그의 연주를 담았다. 연주가 끝나고 다가가 블로그에 영상을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승낙해줬다. 고마운 마음에 작은 감상료도 함께 전하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를 속삭였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이들, 연인들, 어르신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이 광장을 지나가는 모습이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걷고, 웃고, 때로는 멈춰서는 이 모습들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이곳을 걷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세월 속에 묻히지 않은,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들. 도시는 변해도,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추억은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화정역을 다시 걷던 이 시간이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이 도시는 여전히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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