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우리는 처음 만났다.
당시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입학했다고 해서 선배들은 우리를 ‘88학번 꿈나무’라 불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기에 공부는 주로 시험 기간에만 집중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낮에는 당구와 족구, 밤에는 주점에서 보내기 일쑤였다.(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ㅎㅎ)
1992년쯤, 졸업 후에도 우정을 이어가자며 몇몇 친구들이 시작한 모임이 어느덧 10명의 아저씨들로 자리 잡았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는 3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20대, 30대, 40대, 그리고 이제 50대 후반이 된 지금, 우리의 대화 주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 이제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건강’이다.
40년 지기, 그리고 친구의 싸움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날, 10명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래 전부터 정해둔 약속이었고 그저 서로가 보고 싶어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 모임은 한 친구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친구는 얼마 전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몇 년 전 폐암을 이겨내고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치다니… 당사자는 물론, 우리 9명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해줄 수 있는 말은 정작 많지 않았다.
“힘내라.”, “잘 이겨낼 거야.”
뻔한 말뿐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늘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오던 녀석이라 이번에도 잘 견뎌낼 거라 믿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마음이 약한 구석이 있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우리가 준비한 작은 이벤트
머리숱도 많고 흰머리 하나 없던 녀석이 항암 치료로 인해 결국 민머리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머리카락을 밀어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완치된 후, 지금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 크게 웃을 날이 올 거라 믿으며.
그렇게 어느덧 8차에 걸친 항암 치료 중 6회차가 끝났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끝까지 잘 견디고 이겨낼 거라 믿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모두 함께 풍경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 날을 꿈꿔본다.
오래오래,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웃고 떠들고 즐거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도 서스럼 없이 해왔던 우리였던 것 처럼 앞으로 그렇게 쭉 살아가자. 사랑한다, 내 소중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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