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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보따리

빌려준 건 돈이었지만, 잃어버린 건 더 컸다.

by 두 번째 햇살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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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준 건 돈이었지만, 잃어버린 건 더 컸다

사진 출처 :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2021년 3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범한 날이었다. 그런데 평소 톡으로만 대화하던 친구가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왔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1천만 원. 7월 말이면 해결된다며, 반드시 갚겠다고 했다.

 

1천만 원. 가벼운 돈이 아니다. 형제도 아닌 친구에게 선뜻 빌려주기엔 망설여지는 액수였다. 처음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내 손엔 돈이 있었다. 연초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예전에 들어둔 보험 덕에 암 진단 및 수술 보험금을 받았던 터였다.

 

이 친구는 대학 동기였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골프를 시작하면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고민 끝에 결국 1천만 원을 보내주며 말했다.

“이 돈, 내 몸에 칼 대고 받은 돈이다”

빌려준 돈, 그리고 점점 무너지는 신뢰

7월이 지나도 그는 돈을 갚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당장 급한 돈은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그는 갚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가끔 골프를 쳤고,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말했다. “당분간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지만, 반드시 갚겠다.” 함께 있던 친구 중 한 명이 조언했다. “채무가 많다면 가장 가까운 친구들 돈부터 갚고 법적 구제 방법을 찾아봐.”라고. 하지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 친구는 자존심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연락

2024년 5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문자를 보냈다.

 

“나 : 잘 지내니? 이런 문자 보내기 싫었는데, 올해로 나도 정년이라 정리할 것들이 많다. 7월 말까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전화는 하지 마라. 더 이상 통화하고 싶지 않다. 3년이면 충분히 기다린 것 같다. 이자는 생각도 안 한다. 부탁한다.”

 

답장이 없었다.

 

“나 : 내가 ‘친구’이긴 하니? 니가 날 ‘호구’로 여긴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여력이 없어서 못 갚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 태도가 정말 섭섭하다. ‘미안하다, 좀 더 시간을 주면 꼭 갚겠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디?”

 

어이가 없었다. 난 배신감이 들었고,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친구 : 내 잘못된 선택으로 파탄이 났다. 네가 정한 기한까지 해결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다. 현재 급여 압류 중이고, 최소 2년은 더 걸릴 것 같다. 네가 내 목숨값이었다고 한 말도 정확히 기억한다. 빚을 갚지 못하면서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다. 2년이 더 걸리겠지만, 정리되면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갚겠다. 미안하다.”

 

“나 : 그래, 이런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것을. 바보 같은 놈. 알았다. 기다려 주마.”

 

“친구 : 고맙다. 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달려갈 거야. 기다려다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또 아무런 연락이 없다.

 

자존심이 아무리 세더라도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중간중간이라도 뭔가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할 말이 없어서, 창피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정말 이건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나는 그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그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돈을 못 받을 가능성은 없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가 문제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잃었다

 

가끔은 그날, 내가 그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 순간 나는 믿고 싶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돈보다 더 큰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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